충남 예산(禮山) 고향에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전, 내가 한창 어린 소년 보이일 때의 일이다. 삽다리(삽교)에 5일장이 서는 날, 삽교읍까지 고개넘고 작은 내를 건너 아버지 어머니 따라 조영남이 부른 '내고향 충청도'에 나오는 하얀 교회당, 기차정거장, 소년 조영남이네 집 앞을 지나가던 일이 지금은 거의 잊혀질듯 하지만 먼 추억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조영남. 그는 얼굴 모습이나 말투나 행동이 그가 부른 노래들과 취미에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그의 구수하고 꾸밈없는 풍김새에 슬며시 정이 가서 참으로 좋다. 이런 것들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가 서울대를 다녔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보통 청년이 아니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거니와, 지금도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그림 글 솜씨를 보면, 조영남은 타고난 藝人이며 영원한 知性人이다. 또한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나왔으니 이 세상 누구도 그의 온전한 신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해도 본인 말대로 엄연히 목사자격증 소지자인 그는 아무도 무시못할 信仰人이다.
그의 역저 ″예수의 삿바를 잡다″를 읽어보시라. 이 책은 조영남이 미국신학교에서 미완성 신학생으로서 갈고 닦으며 성경을 주해해서 자기의 인생역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신앙적 자서전이다. 이 책을 나는 호놀룰루시내에서 떨어진 하와이주립대학 근처, 내가 살고있는 동네에 자리잡은 맥컬리주립도서관 이층 한구석을 다차지하며 빼곡 찬 한국책 서가에서 찾아 단 숨에 읽어내려갔다.
처음 앞페이지에서는 구약 신약의 성경 풀이에 좀 재미 없겠다고 생각이 들던 책이었지만 몇 페이지를 더 읽어내려가자 조영남의 예의 스스럼없는 자기 인생 폭로 입담에 나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지으며 기뻤다. 이 책에서 조영남 그는 정말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얼마전에는 그가 정말 그럴 각오를 하고 썼는지 아닌지 그의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어쨋던 문화 비평서랄 수 있는 책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조영남 책 이전에 서울 주재 한 일본 기자의 책의 이름 "맞아죽을 각오로 쓴..."과 유사)이 일본입장을 두둔한다는 세인의 질타를 매국놈인양 무수히 맞았다.
그레서 넠아웃 그로키상태에까지 이른가 싶으니까, 일본을 바르게 알자는 게 책의 본 주제라는 그의 변명에 한 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 같아서 나는 그 당시 유쾌히 웃고만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 2005년 4월 24일자 일본 산케이신문에는 일본사람들이 좋아라할 정도로 조영남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글과함께 나왔으니...(1)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절대로 조영남 예찬론을 펼치기 위함은 아니다. 조영남 그 자신이 떠벌리듯 고백하고 다니는 그의 인생행로를 들쳐볼 때가 많다. 그가 겪은 삶 중에서 큰 굴곡을 차지하는 것 만큼이나 내 인생여정과 비슷한 점이 있는 그의 처지에 서서 나는 그를 내 입장에서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청담동 번듯한 집에서 손때묻어 조금 헤진 가죽소파와 더불어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만 왕년에 몇번 여자들하고 살았다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어쩌다저쩌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졌지만 늘 여자만 보면 페미니즘이 발동하며, 기사가되어 어느 순간에 기사도를 발휘하여 다시 백년가약을 맺고 마는 것이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남들보다 조금더 자유분방해지기를 바라는 그의 성격상 그의 여성편력이라고 들추어보아도 다른 보통사람들과 별다른 데가 없다. 그가 예술을 좋아하는 연예인이라서 남들의 눈에 호기심으로 비쳐지기 일쑤인 것일 따름이다.
조강지처는 엄처이었던지 이별의 아픔과 자식빼고는 별 얘기가 없었지만 그는 환갑이 가까와 질 무렵에 나이 어린 아내와 살며 미국유학까지 보낸 막내누이같은 젊은 아내가 자동차운전시험에 합격했다고 헤벌쩍 웃으며 대견하다고 (솔직한 말이지 미국에서 운전면허합격같은 것은 별일도 아닌데) 좋아하던일은 그의 맺힌 데 없는 착한 심성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어쨋던 살다가 헤어지면 남녀의 관계란 서로 다른 손익계산이 있기 마련인데, 조영남은 자기 말대로 몇번 이혼에 빈털털이가 다 됐다는 누가 들어도 눈시울이 적셔질만한 서글픈 말을 속마음이야 어찌됐던 호탕하게 웃으며 떠벌리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놀고 먹는 짓은 아예 못하는 성격으로 열심히 노래 부르고 티브이에 나와 구수한 입담이지만 어딘가 쓸쓸하게 보이는 멘트와 모습을 날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도 점점 팬들의 갈채로부터 사라져가고 있다.
고독한 삶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를 바라보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내가 어릴 때 떠나온 내 고향 예산의 조그만 마을이 떠오르고, 옛 친구들 중에 조영남이 같은 친구가 그리워지니까 그가 내 고향 친구처럼 좋다.
조영남 그친구 본인 말대로라면 자기는 대한만국 인기가요 순위 1등 한번도 못해보고, 힛트곡 하나없이 환갑이 다되도록 허구헌 날 '제비' '딜라일라' '화개장터' '내고향 충청도' 등 몇개 안되는 노래불러 밥벌어먹고 사는 주제란다. 그러는 그의 너스레가 언제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는 것을 보면 우리한테 가장 가까운 이웃 친구, 맘씨좋은 충청도 아저씨이다.
내가 선랜드 산골에서 살 때 고독한 밤 잠 못 이루고 등불을 낮게 밝히고 라디오 코리아의 심야방송에 신청곡으로 청해듣던 단골 노래 노사연의 '님그림자'와 조영남의 '사랑없인 난못살아요.' 지금 그가 부르는 노래는 나의 애창곡 중의 애창곡이다. (靑山 기자, 시인, 펜뉴스 자문위원[펜뉴스 2007-01-17 19:17:48])
조영남 -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 밤 깊으면 너무 조용해 책 덮으면 너무 쓸쓸해 불을 끄면 너무 외로워 누가 내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 세상 사랑없이 어이 살수 있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없인 난 못 살아요 한낮에도 너무 허전해 사람틈에 너무 막막해 오가는 말 너무 덧없어 누가 내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 세상 사랑없이 어이 살수 있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태그 :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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