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일 금요일

난초 옆에서. 외 2

                                                               자생란(自生蘭). '댓잎은난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은대난초.

'국화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제 시 '난초 옆에서'(시문학 251호)가 생각이 나서 올립니다.

난초(蘭草) 옆에서
청산


생명의 길을 간다
더러는 즐거이, 힘겹게.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신이 마련한 에움길과
외골목길을 지나서 나의 巡禮者는
곧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

꿈은 신이 주신 길
꿈 속
걸어온 길 위에
사시사철 바람 따라서
홀로 가벼이 흔들리며
살짝 드리운 허공.

삶을 돌이켜 보는
淸雅한 기상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순례자의 길을 걷고 싶다.)
꿈에서 깨어나
좋은 세상 살고 싶다.

* 순례자는 곧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 영국 작가 John Bunyan(1628-1688)의
청교도 이야기 <순례자의 길> (The Pilgrim's Progress, 1678)의 주인공
인 巡禮者 크리스챤이 꿈 속에서 험난한 길을 택하여 천국 도시에 이를
수 있었다.

===

고맙습니다. 청산님
시 잘 읽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것도 같고요..
바람따라 홀로 흔들리는 난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푸르나)
...

<시문학>의 발행인인 문덕수 시인께서 철학적인 데가 있는 시라는
시평을 써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청산)
===

난초(蘭草)
이병기(시조시인 1891.3.5~1968.11.29)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르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 한시 허난설헌
허경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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