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6일 일요일

가끔 우두커니 되는 그녀는 고독하고 고결한 시인이다


"선생님, 아직도 마들에 사시지요?"
"그래요. 여기 한 번 오니 계속 있게 되네요."
"요즘 날씨 추운데 어떠세요? 시집 산고도 있는 것인데..."
"그런 게 있었나봐요. 일주일간 심하게 앓은 후에요. 오늘 좋아졌네요."
" 목소리가 건강하게 들려서 참 좋습니다."

최근에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를 펴낸 천양희 시인과 통화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시인께서 들으시면 참 민망히 여길 이야기이지만, 시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고결'입니다. 
저는 어린아이가 아니니 시인들에게 그런 따위의 품격을 절대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런 환상이 남아있다면 천양희 시인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어본 사람은, 이 분이 언어의 건축을 얼마나 견고하게 쌓아올리는 지 알 것입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어느 작품 하나 버릴 게 없을 정도로 모두가 튼실한 구조를 지녔습니다. 
이게 전문가들 뿐 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문학인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천 시인의 고결한 품성은, 절대로 영합을 도모하진 않겠지요.

한국어를 평생 벗삼아온 시인답게 언어의 유희를 삶의 도를 닦는 데 쓰고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가/붉은 사과 한알보다 더 붉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왜 몰랐을까' 중) 
'정치를 치정으로 정부를 부정으로 사설을 설사로/신문을 문신으로 작가를 가작으로 시집을 집시로//거꾸로 읽다보면/하루를 물구나무섰다는 생각이 든다/내 속에 나도 모를 비명이 있는 거다//어제는 어제를 견디느라/잊고 있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직성(直星)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넌 아직도/바로 보지 못하는 바보냐, 한다/거꾸로 읽을 때마다/나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거꾸로 읽는 법' 중)
'

이미 여러 평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이번 시집은 묵상의 도저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경지는 사람과 자연, 남과 여, 하늘과 땅의 경계가 허물어진 어느 곳에서의 평정입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것을 지향하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지요.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의 고독과 슬픔, 상처, 회한 같은 것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시경(詩經)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이번 시집입니다. 

'허난설헌을 읽는 밤'처럼 조선의 여성 시인으로, 또 한 사람의 아내로 살면서 고결함을 유지하고 싶어했던 사람의 눈물자국도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시인의 개인사를 슬쩍 생각하는 것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고결한 시인께서 "따뜻한 봄날에 꼭 보자"고 하셨습니다. 시인은 오늘 '겨울 들'에 계십니다.

마들에 나가
들판 끝 본다
눈 끝의 새 본다

들풀에도 새가 앉네
새는 가벼우니까 
들판의 새보다 더 가난한 게 있을까
가난은 가도 가도 가벼운 것
가벼운 것이 들 한 쪽 물고
어둔 구름에서 나온 번개같이 
날아간다 거침없이
허공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고라도 하듯 거침없이 

하늘 추워지고 꽃 다 진다
꽃 진 자리에 새울음 남아 있다
저 울음보다
맑은 가난이 또 있을까

허허들판 

*글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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