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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가 뽑은 2009년 최고의 선수는 단연 양용은(37)이다. 지난 3월 최경주(39)에 이어 한국인 골퍼로는 두 번째로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혼다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데다 8월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며 아시아 골퍼 최초의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양용은에게 주목하는 건 단순히 우승컵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고난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의 새벽별을 노래했고, 마침내 세계 골프계의 큰 별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진흙 속에 피는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포츠춘추'가 양용은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그가 거둔 성적보다 그가 그러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사고의 변화에 집중했다. 
2006년 9월 25일 아침 인천공항 청사는 한산했다.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사람들을 모두 훑고 간 듯 적막하기까지 했다. 그런 연유였을까. 커피숍엔 사내 혼자 앉아 있었다. 노랑으로 물든 머리와 몸에 ‘쫙’ 달라붙는 반소매 티셔츠. 한눈에 알았다. 만나기로 약속한 인터뷰이였다.
2006년 9월 인천공항에서 만난 양용은. 이때만 해도 그는 지금 같은 스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그의 겸손함과 품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사진=H스튜디오 이휘영 작가) |
그의 이름은 양용은. 34살의 남자골퍼. 전날 한국 골프대회 가운데 최고 상금이 걸린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이였다. 그가 아침 8시 일본행 항공기를 타야 했기에 인터뷰는 7시부터 시작됐다. 피곤할 법도 했다. 눈이 감길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답변은 성실했고, 내용도 알찼다. 원래 인터뷰 때 그렇게 성실한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자주 있는 인터뷰도 아닌데요."였다. 그랬다. 당시 양용은은 지금 같지 않았다. 공항 커피숍에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인터뷰 도중 사인지를 내미는 불청객도 만무했다.
그저 제주 태생으로 스무 살이 다 돼서야 골프에 입문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멋쩍은 미소를 짓던 이였다.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하며 골프를 배웠다고 수줍어하던 사내였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 대회 수가 적어 일본프로골프협회(JPGA)투어에 활동할 수밖에 없다며 아쉬운 표정을 짓던 골퍼였다. 1달 뒤 미 PGA 최종 퀄러파잉스쿨(Q스쿨)에 붙어 ‘제2의 최경주가 되겠다’던 도전자였다.
햇수로 4년 만에 다시 봅니다. 그때도 훌륭한 골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유명하진 않았어요.
그러네요(웃음). 뭐, 예전보다 조금 유명해지긴 했어도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키며) 보세요. 여전히 얼굴은 까맣다니까요(웃음).
얼굴은 여전히 까말지 몰라도 '양용은의 현재'는 눈이 부십니다. 골프계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입이 '쫙' 벌어질 정도입니다.
(손을 내저으며) 과찬입니다. 전 그저 제 일을 묵묵히 잘 해왔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당신 말대로 '월드 스타'가 됐는데도 달라진 건 없는 듯합니다. 여전히 친절하고 겸손하세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음,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청소부나 대통령이나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누가 청소부라고 업신여기고, 누가 대통령이라고 떠받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청소부와 대통령을 형식상 대할 때는 갖춰야 할 예의가 다를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다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내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앞으로 골프는 변할지 몰라도 이 마음만은 변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버려야 산다. 버려야 채울 수 있다. 2002년 SBS최강자에서 우승한 걸 제외하고 양용은의 국내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저 내일도 오늘과 같은 훈련으로 스스로를 부단히 단련할 뿐이었다.(사진=KPGA)
2006년 한국오픈 전까지 그의 우승경력은 2002년 SBS최강전 우승이 전부였다. 골프팬들이 통산 1승의 양용은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JPGA투어에서 4승을 거두긴 했다. 그러나 미 PGA투어면 모를까 일본에서의 우승에 관심 있는 골프팬은 거의 없었다.
당시 양용은은 "한국오픈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원래 대회 3일째 되는 날이 셋째 아들 첫돌이었다. 대회 때문에 돌잔치를 월요일로 앞당겨 치렀다. 그때 술도 조금 마실 만큼 좋은 성적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출전하자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우승은 그의 몫이었다. 양용은은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우승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누가 알았으랴. 훗날 양용은이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로또에 당첨되리라는 것을.
인터뷰 도중 그는 조심스럽게 "미 PGA투어에 진출하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최경주 선배처럼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일지 몰랐다.
"지난해 미 PGA투어에서 뛰려고 (Q스쿨에)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어요. 이번이 두 번째 도전입니다. 네? 올해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글쎄요. 뭐, 크게 실망할 것 같진 않아요. 왜냐고요? 혹여 실패해도 다음이 있으니까요. 왜 골프도 그렇잖아요. 해저드에 빠지는 날이 있으면 홀인원을 기록하는 날도 있지 않습니까."
2006년 미 PGA투어에서 뛰려고 Q스쿨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타이거 우즈(미국)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제치며 '깜짝 우승'을 차지하고서 그토록 바라던 미 PGA 투어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2007년 부진하며 곧바로 시드를 잃습니다. 다행히 그해 Q스쿨을 어렵게 통과하며 2008시즌 출전권을 따냈는데요. 안타깝게도 2008년 상금순위 157위 밖으로 밀려나며 다시 Q스쿨을 봐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번에도 다행히 Q스쿨을 통과해 2009시즌을 맞긴 했지만, 당신의 가능성을 인정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한 골프해설가는 "최경주가 뜨니 너도나도 미 PGA투어에 가려고 한다"며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미 PGA투어에서 성공할 한국선수는 최경주 정도"라고 못박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을 겨냥한 발언인지도 몰랐는데요. 그러나 올 시즌 놀랍게도 당신은 상상 이상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아시아 골퍼로는 최초로 미 PGA투어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것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말이지요. 한순간에 이렇듯 한 골퍼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기술적으로 다소 변화를 줬습니다.
그게 뭐지요?
그립을 바꿨습니다. 지난해까지 제 그립은 손등이 하늘을 바라보는 스트롱그립, 일명 '훅그립'이었어요. 아마추어 골퍼들이 흔히 사용하는 그립이지요. (회한에 잠긴 듯 혼잣말을 하듯) 참, 이 그립으로 10년을 살았네요. 10년을…. 하지만, 미 PGA투어에서 7번 연속 컷오프를 경험하며 '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볼 컨트롤의 정교함이 떨어져 아무래도 경쟁력이 없다 싶었어요.
그립 변화라, 개인적으로 아주 대단한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스윙이라든가 말이지요.
그립 변화는 어찌 보면 매우 기본적인 변화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걸 아셔야 해요. 가장 기본적인 걸 변화하는 게 가장 큰 기술이 될 수 있음을요.
10년간 쓰던 그립을 바꾸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듯싶습니다.
(고개를 흔들며) 2주 만에 바꿨어요.
2주요?
네. '딱' 2주 걸렸습니다. 사실 당시 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었어요. ‘이것마저 바꿨는데 안 되면 넌 미 PGA투어에 남을 자격이 없다. 기본기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면서 무슨 미국에 남아 있겠다고 버티나. 네 그릇이 요만하다면 요만한 그릇들이 있는 투어로 돌아가는 게 맞다. 이번에도 안 되면 무조건 짐을 싸라’라는.
그렇다고 2주 만에 10년 쓰던 그립이 바뀌나요?
저도 가능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길게 숨을 내쉬며) 휴우-. 그런데 포기하니까 되더군요.
포기요? 뭘 말입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골프요. 골프를 포기하니까 그립이 2주 만에 바뀌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생각이 변하면 결과가 변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립을 바꾼 뒤 성과는 있었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립을 바꾸고 13개 대회인가 출전했는데 2개 대회만 컷오프하고 다른 대회는 모두 본선까지 올랐습니다. 그때 속으로 '아, 10년 쓴 그립도 안 되는데 2주 만에 만든 새로운 그립이 통하는구나'하며 제 스스로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그립을 바꿨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랬지요. 지난 1월 소니오픈 때는 하와이까지 날아가 1주일이나 기다렸는데 결원이 생기지 않아 '피'같은 돈만 날리지 않았습니까(웃음). 하지만, 그때 포기하지 않은 게 뒷날 혼다오픈과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같아요.
2008년 제주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에 참가한 양용은(사진=스포티즌) |
앞서 기술적인 변화를 설명하셨는데요. 정신적인 변화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게 골프는 '멘탈(심리) 스포츠'잖아요. 당신의 플레이를 보면 정신적으로 참 강인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 특별히 정신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진 않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음, 그래요. 아마추어나 유소년 골퍼들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는데요. '대회 때 애써 잘 하려 하지 말고, 연습 때처럼 여러분이 아는 플레이, 여러분이 아는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갑자기 미소를 띠며) 다 지난 일이니까 아주 창피한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게요.
네.
프로에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 대회에 출전했어요. 그때 티(Tee)를 꼽는데 (눈을 크게 뜨며) '와!'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이 떨리는 거예요.
손이요?
네. 손이요. 정말 '막' 손이 떨리더라니까요. 당연히 경기가 제대로 풀릴 리 없지요. 그때 생각한 게 '다른 건 몰라도 절대 떨지만 말고 경기하자'였어요.
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는 건 보기보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 골퍼들이 떠는지 아세요?
긴장해서 떨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건 초보 때지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는데도 떤다면 이유는 하납니다.
뭔가요?
너무 가지려고 하니까 그래요. 너무 원하고 갖고 싶으면 떠는 법입니다.
음.
제가 그랬어요. 지난해까지 너무 가지려고 하다 보니까 긴장하고 떨었어요. 18홀을 돌면서 하나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걸 안 하겠다고 계속 긴장하면서 떨었던 거지요. 하지만, 올 시즌 들어 그런 생각을 버렸어요. '지금 갖지 못해도 다음 기회가 찾아오면 그때 갖지 뭐' 하면서 마음을 여유롭게 먹기 시작했지요.
욕심을 버리는 게 되레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란 뜻 같군요.
맞아요. 집착하지 않아야 뭔가를 가질 기회가 더 많이 생깁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전 그걸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타이거를 동경한 사내. 이윽고 타이거를 넘다.
기회는 온다. 반드시 온다. 때를 기다리는 자에게 온다. 준비된 자에게 온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게 골퍼의 운명이다(사진=KPGA) |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뒤졌다.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윽고 녹음파일을 찾았다. 파일명은 ‘2006.9.25.인천공항.골퍼 양용은’. 4년 전 녹음을 듣는 건 학생 시절의 졸업앨범을 펼쳐보는 것과 같다. 부자연스럽지만 생경하고, 생경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타이거 우즈 같은 골퍼라면 모를까" "타이거 우즈 같은 사람은" "감히 타이거 우즈와 비교가"…. 4년 전 양용은은 기자 앞에서 '타이거 우즈'를 정확히 12번 입에 올렸다. 골프를 전혀 모르는 이가 옆에 있었다면 타이거 우즈를 '교주'쯤으로 받아들였을 터. 그 정도로 양용은은 우즈를 높이 평가했다. 우상으로 생각했다.
인터뷰 끝에 양용은은 "미 PGA투어에서 타이거 우즈와 대결하면 좋겠지만, 일단 Q스쿨을 통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덧붙여 "(미 PGA투어 우승은) 아직 먼 꿈"이라고 했다.
2006년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와 올 시즌 미 PGA투어 'PGA 챔피언십'에서 연달아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호랑이(타이거) 사냥꾼'이란 별명이 생긴 것도 그때문이었습니다. 와! 우즈를 이기다니. '골프 황제'를 말이지요. 제가 다 실감이 나지 않는데요.
이기려고 작정했다면 졌을 거예요.
무슨 뜻인가요?
라운드 내내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질 텐데 내 마음대로 치자'고요(웃음). 우즈 같은 대선수와 붙을 때는 이기려는 것보다 부담을 줄이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18번 홀에서 당신이 기록한 버디 퍼트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늘 궁금했던 것인데요. 마지막 버디 퍼트에 성공했을 때 손끝으로 느꼈을 감정이 궁금합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글쎄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손끝에 어떤 감정이 느껴졌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당시 2퍼트만 해도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야, 이 바보야. 2퍼트만 해도 이기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먹어'하고 주문을 걸었어요. 결국, 편안하게 마음먹은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PGA 챔피언십에 앞서 혼다오픈에서도 우승했지만, 두 대회의 무게감은 확연히 다를 듯합니다. 특히나 PGA 챔피언십은 메이저대회이기에 기쁨이 더 컸을 텐데요. 이 우승으로 당신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음, 맞아요. 그 우승으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제 인생을 '확' 바꿔놨어요. (눈을 가늘게 뜨며) 참, 지금까지 살아오며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만, 제 인생에 그렇게 큰 행운이 찾아오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혼잣말을 하듯) 정말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정말 꿈을 잃으면 안 됩니다. 정말.
미 PGA투어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사진 왼쪽)을 꺾고 우승한 양용은이 주먹을 쥔 채 포효하고 있다(사진=스포티즌) |
PGA 챔피언십 우승 이후 당신이 세계 골프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이젠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골퍼로 발돋움했는데요. 그 바람에 저 같은 기자들이 당신을 도통 놓지 않게 됐습니다.
가끔 인터뷰하는 게 힘들 때도 있어요. 속으로야 '10개 질문할 거 7, 8개만 하면 좋겠다' 싶지요. 하지만, 다 결과가 좋아서 생긴 일들이라 이럴 때일수록 더 겸손해지려고 해요. 뭐, 인터뷰가 귀찮다고 도망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웃음). 사실 그래 봤자 해결되는 것도 없어요. 모두 '행복한 피곤'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올 시즌 거둔 기대 이상의 성적이 되레 내년시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그럴 수도 있지요. 저 역시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내년에도 성적이 좋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제가 바란다고 일이 다 잘 되겠습니까. 온 힘을 다했는데 안 되면 그땐 운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해야겠지요. 물론 결과야 중요합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전 그래요. 남들이 알아봐 주는 것보다 제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성적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저 자신이 점수를 매기며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연장 인생’이었던 사내의 꿈,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
양용은이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24살 때 가까스로 프로테스트에 합격한 것도 유명하다. 2006년 양용은은 자신을 가리켜 ‘연장 인생’이라고 한다. 무슨 소릴까.
양용은의 골프 인생은 느리고 더뎠다. 하지만 그는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걸 목표로 삼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사진=KPGA) |
가을에 열린 2차 테스트에선 아예 본선도 오르지 못한다. 깊은 절망에 빠진 양용은. 하지만, 행운은 그의 편이었다.
1차 테스트 때 20명을 뽑아야 하는데 실수로 15명만 뽑은 협회는 나머지 5명을 선발하기 위해 1, 2차 본선에서 떨어진 이들을 대상으로 3차 테스트를 연다.
그 테스트에서 양용은은 가까스로 공동 5위를 차지한다. 둘 가운데 한 명이 떨어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양용은은 동점자와 연장전을 벌인다. 결국, 마지막 홀에서 버디에 성공하며 그토록 염원하던 프로에 입문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양용은은 2002년 SBS최강전에서 최상호, 박노석 등 쟁쟁한 선수들과 우승을 다툰다. 우여곡절 끝에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진다. 경험 미숙의 양용은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자신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반대였다. 마지막 홀에서 기적 같은 이글이 터졌다. 양용은이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우즈는 3살 때 9홀을 플레이해 48타를 쳤습니다. 반면 당신은 20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습니다. 세계적인 골퍼 가운데 당신 같은 늦깎이 골퍼도 드문데요. 당신을 롤모델로 삼는 주니어 골퍼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나요.
프로 골퍼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꾸준한 근력 운동이 필요합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전문적인 트레이너와 훈련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 외 기술적인 부분을 향상하려면 마음에 맞는 코치와 만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 코치와 계속 연습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기리라 봅니다. 아, 그리고.
그리고?
예전부터 꼭 많은 골퍼에게 들려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요.
뭔가요?
‘골프를 좋아하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라는 겁니다.
골프를 좋아하고 사랑해달라?
네. 골프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좋아하면 많이 하고, 많이 하면 개선되는 게 인생의 진리입니다. 골프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더 많이 훈련하고 더 자주 필드에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5년, 10년 뒤 자기도 모르는 새 노력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미 PGA투어에서 뛰면서 어떤 면에선 한계를 느낄 때도 있을 듯싶어요.
음, 사실 아시아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서양 선수들보다 조금 부족한 감이 있어요. 기술도 그래요. 서양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아시아 선수들보다 어릴 때부터 좋은 기술을 습득하고 단련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이’에 불과합니다.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선수 개개인의 노력에 달렸다고 봅니다.
체력과 기술 말고 다른 차이는 없나요?
코치겠지요. 미국이나 유럽은 계속 진화하는 선진골프를 그때그때 배울 수 있어요. 좋은 코치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반열까진 오르지 못했습니다. 보세요. 한국인 가운데 세계챔피언은 있어도 세계 정상급 티칭코치는 아직 없지 않습니까.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됐습니다. 당신이 예상하기에 언제쯤 한국선수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을까요?
글쎄요. 후배 가운데 뛰어난 골퍼가 있으면 금방이라도 오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세계랭킹 1위는 한두 대회에서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한 시즌을 치러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2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그 이전에도 이룰 수 있겠지요.
2004년 KPGA대상 시상식에 참가한 양용은. 기회가 되면 조국을 위해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단다(사진=KPGA) |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에서 골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고 싶다”는 의향을 나타낸 것으로 압니다만.
올림픽에 나간다면 그보다 큰 영광도 없겠지요. 국가의 명예를 걸고 출전하는 만큼 자부심도 대단할 테고요. (신중한 표정으로)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7년 뒤 열리는 올림픽에 나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코치, 감독으로 출전할 수도 있을 테고. 어쨌거나 기회만 찾아온다면 어떤 형태로든 꼭 올림픽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 선수들이 많기에 메달전망도 밝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내년 시즌 전망은 어떻습니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웃음). 희망사항이 그렇다는 것이고요. 미 PGA투어에서 1승이라도 거두겠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용은의 인생철학 '좋아하면 많이 하고, 많이 하면 잘한다.'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며 양용은과 악수를 했다. “JPGA투어에서 선전하기 바란다”는 격려와 “미 PGA투어에 꼭 진출하기 바란다”는 덕담을 들려줬다. 양용은은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라며 환하게 웃었다. 정확히 3년 뒤 실제로 그렇게 됐다.
2009년 10월 2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 기자회견장에서 다시 만난 양용은은 “미래”와 “도전”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과거 ‘타이거 우즈’를 12번이나 입에 올리던 사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도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갈 뿐이다. 내년시즌에도 부단히 변화하면서 앞으로 나갈 거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난해까지 그의 다짐이 광야의 외침이었다면 지금은 희망의 종소리다.
양용은이라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골프를 인생 못지않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그이기에 어려운 일도 아니란 생각이다. 그의 골프인생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다. ‘진흙 속에 핀 꽃’이다. 어떤 고난과 고통에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새벽별을 노래하며, 마침내 세계 골프계의 큰 별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혼자지만, 조만간 씨를 뿌려 진흙을 화원으로 만들 것이다. 그것이 시대가 양용은에게 내린 사명이다.
그도 알고 있었을까. 가까운 미래 자신이 무대를 옮겨 미 PGA투어에서 주먹을 쥐며 포효할 것이라는 걸(사진=KPGA)
당신의 선전으로 여자골프계에 눌려 있던 남자골프가 비로소 기를 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미 PGA투어에서 우승하는 것과 미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우승하는 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네요.
조그만 시골 학교에서 1등 하는 것과 도시 학교에서 1등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쉽겠습니까? (“전자가 아니겠느냐”고 하자)
그렇겠지요. 확실히 미 LPGA투어보다 미 PGA투어 선수층이 두터운지 경쟁도 치열합니다. 우승확률도 상대적으로 낮고요.
2010년 4월22일부터 25일까지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장에서 열리는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에 출전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회는 총상금 210만 유로가 걸린 국내 최대 규모의 골프대회입니다. 2008년에도 출전한 바 있는데요. 특별히 발렌타인챔피언십에 계속 출전하는 이유가 있나요.
고향인 제주에서 열리고, 총상금 규모도 큰 대회라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회입니다. 무엇보다 전 프로골퍼입니다. 다른 대회 다 제쳐놓고 찾아오는 건 주최 측에서 그만한 정성을 제게 보여줬기 때문이겠지요.
꽤 오래전부터 이 대회 참가를 약속했던 걸로 압니다.
아마 1년 6개월 전에 결정했을 거예요. 올해 대회도 오고 싶었습니다만, 미 PGA투어 일정이 많아서 올 수 없었어요.
이해합니다. 올 시즌이 당신에겐 무척 중요한 한 해였지요.
맞아요. 올 시즌 부진하면 또 Q스쿨에 가야 했기 때문에 다른 데 정신을 팔래야 팔 수가 없었어요. 찰리 위(한국명 위창수)와 케빈 나(한국명 나상욱)만 봐도 늘 불안한 상태에요. 못하면 언제 Q스쿨에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 부담감을 안 느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얼마나 불안하고 갑갑한지. 어떨 때는 불안해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정도에요.
올 시즌 2번의 우승으로 이제 그런 부담감에선 해방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지요. 잘하든 못하든 얼마간은 마음 편하게 골프를 칠 수 있게 됐어요. 행운이지요.
양용은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진흙 속에 핀 꽃에 주렁주렁 열매가 맺힐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골퍼로서 우승을 제외하고 골프팬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거창하게 가치라고 하기는 그렇고. 모든 분이 자기 일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 좋아하지 않는 직장을 마지못해 다니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생각을 바꿔 자신의 일을 사랑했으면 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좋아하면 많이 하고, 많이 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골프나 인생이나 똑같습니다.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당신의 행운을 빌겠습니다.
아, 개인적으로 작은 바람이 있는데요.
바람이요?
네.
뭡니까?
골프도 다른 종목처럼 국군체육부대 ‘상무’에 골프팀이 생겼으면 합니다. 한창 성장할 선수들이 군에 입대해 2년 동안 골프와 담을 쌓는 일이 흔한데요. 병역특혜까지는 아니어도 젊은 엘리트 골퍼들이 골프를 계속 할 수 있게끔 국가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 가운데 ‘한국의 타이거 우즈’가 나올지 또 누가 압니까.

지난 3월 최경주(39)에 이어 한국인 골퍼로는 두 번째로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혼다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데다 8월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며 아시아 골퍼 최초의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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