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메일까

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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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1위, <봄날은 간다>
                                                                                                    천    양    희 | 시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작사:손로원, 작곡:박시춘, 노래:백설희) 중에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언니들이 부르던 유행가를 동요보다 먼저 따라 불렀다. 뜻도 모르고 귀동냥으로 배운 유행가를 어린 내가 왜 그토록 청승스럽게 잘 불렀는지 모르겠다.

노랫말이나 가락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냥 따라 부른 유행가였지만 나는 그 노래들이 그냥 좋았다. 어떤 노래는 두세 번만 들으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봄날은 간다>를 제일 좋아했고 잘 불렀다. 그 노래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른 첫 유행가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란 첫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다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 대목을 부르고 나면 왠지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때 내가 알던 유행가는 <봄날은 간다>와 한참 뒤에 배운 <꿈꾸는 백마강>이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로 시작되는 <꿈꾸는 백마강>도 좋았지만 내 정서로는 <봄날은 간다>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내 고향의 뒷산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절골에는 산제비가 날아다녔고 성황당도 있었다. 우리 농장 둑에 올라서면 바로 낙동강이 보였다. 그런 저런 이유로 <봄날은 간다>를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 유행가 잘 부르는 아이로 알려져 동네 어른들도 얼핏하면 유행가 한 곡조 부르라고 성화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동요를 더 많이 배웠지만 나는 동요보다는 유행가 쪽에 더 마음이 끌렸었다. 말하자면 못말리는 악동인 셈이었다.

부모들도 그 소문을 들었을 텐데도 꾸지람을 들은 적은 없었다. 아마 모르셨으리라. 엄한 교육을 시킨 아버지가 아셨더라면 아마도 나는 유행가의 ‘유’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유행가는 어른의 노래이고 동요는 어린이의 노래이니 유행가를 부르지 못하게 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숨어서라도 불렀을 것이다. 그때부터 시인의 기질이 보였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유행가를 계속 불렀던 것은 담임 선생님이 내가 부르는 유행가를 좋아했던 탓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너는 시인이 될 거야’라고 하셨던 선생님이 어느날 내게 물으셨다. ‘너 유행가 잘 부른다면서? 내 앞에서 한 곡 불러 볼래?’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동요가 아닌 유행가를 아이들이 부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잘 부른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야단은커녕 빙그레 웃으시면서 어디  한번 불러보라고 조르셨다.
 
그러나 선생님 앞에서는 어렵고 부끄러워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봄소풍을 갔었는데 놀이시간에 선생님이 불쑥 나더러 유행가 한 곡 불러보라 하셨다.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봄날은 간다>를 구성지게 불렀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선생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노래는 동요가 아니고 유행가지만 우리나라 여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라면서 참 잘 불렀다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그때 선생님의 눈에 고이던 눈물을 보았다.

예쁜 선생님에게도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생각하다 시집 간 내 언니를 떠올렸다. 그 언니가 잘 불렀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였다. 사랑하던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 중매 결혼을 했던 그 언니는 특히 연분홍색을 좋아해서 친정에 올 때는 꼭 분홍색 옷을 입고 왔었다. 그 언니는 친정에 오면 잊지 않고 뒷동산에 있는 성황당과 암자를 찾았다. 마치 누구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꼭 들렀다 가곤 했다. 내 언니는 성황당 돌탑에 돌 몇 개를 정성스레 올려놓고 무엇인가 빌었다.

성황당 고갯길을 넘으면 성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암자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갈 때 언니의 분홍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앞서 가던 언니가 나지막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봄바람에 휘날리던 연분홍 치마와, 언니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가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면 그때가 생각나서 나도 조금 울 때도 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도, 내 언니도 왜 그 노래만 부르면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었을까. 나는 오늘도 우리네 여인의 애환이 담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여인의 애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어린 시절의 <봄날은 간다>를 그리워한다.
 
고독한 이의 불타는 영혼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2위,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    선    영 | 시인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킬리만자로의 표범>(작사:양인자, 작곡:김희갑, 노래:조용필) 중에서


시詩와 달리 가요가 끄는 매력이란 그것이 가사를 가진 음악이자 또한 동시에 곡조가 있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음악이 말하지 않는 시이고 시가 소리나지 않는 음악이라고 할 때, 음악과 시가 서로를 위해 조금씩 자신을 희생함으로 해서 생겨난 것이 가요라고 한다면 그럴싸한 말이 될까. 시가 ‘노리는’것이 언어의 무제한 확장이자 해방, 헤게모니 획득이라고 한다면 가요의 노랫말은 주어진 멜로디 안에서 어찌 보면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양 날개가 꺾인 새장 속 새의 지저귐에는 새장을 찢고 날아오르고자 하는 의지의 날카로운 발톱이란 이미 거세된 것이다. 새장 속 무력하지만 길들여진 새의 지저귐이 야생의 새의 울음보다, 시보다 행복할 수 있다. 달콤한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 시와 가요가, 시와 노랫말이 마치 연적戀敵처럼 서로 묘하게 끌리면서도 서로를 징그럽게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시인이 광대무변廣大無邊을 거침없이 내뱉는 래퍼(rapper)라고 할 때, 랩과 랩송으로서의 시와 가요의 근친관계도 맺어질 여지가 있지 않으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자극하는 것 또한 고독하고 더러 장렬하기까지 한 래퍼로서의 시인의 자의식과 멀지 않다. 중간 중간에 독백 형식을 삽입한 노래의 편곡조차 그 극적인 효과를 한층 배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미 제목부터가 어떤 의미를 암시하는 상징인 데서 짐작되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존 가사 문법에서 벗어난 과감한 수사적 표현이다. 수사의 출발이 ‘낯설게 하기’에 다름아닐 때,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대비는 비천한 생에의 집착과 도리어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도달하고자 하는 생에의 초탈로서 극적인 상징성을 획득한다. 하이에나와 표범의 은유로써도 이토록 서정적일 수 있는 노래가 있던가.

높은 산정의 표범이고 싶어하는 ‘나’라는 페르소나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도저한 허무의식이다. 그 허무의식은 그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그의 존재의 기투성棄投性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질지언정 ‘빛나는 불꽃으로 타오르고자’ 하는 열망은 허무라는 무덤에서 솟아오른 커다란 봉분과도 같다.
 
‘나’라는 페르소나가 삶을 향한 비극적 정열의 소유자임을 증거하는 심상치 않은 씨니피앙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화가 고흐이다. 고흐가 ‘불행한 사나이’였던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비범한 정열의 소유자였던 까닭이다. 고흐는 또한 예술적 투혼의 메타포로서 <킬리만자로의 표범> 어느 구석엔가 예술가적 정열과 광기를 냄새맡을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 고독한 이의 불타는 영혼’이란 다름아닌 예술가의 초상 아님에랴.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흥행 요인, 대중가요로서 반드시 지녀야 할 중요한 미덕을 용케도 놓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노래가 그 어느 연가 못지않은 절절한 사랑노래라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모두를 잃어도/사랑은 후회 않는 것/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라고 노래 불릴 때 거기에서 사랑의 맨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되었음을 어찌 실토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러나, ‘굶어 얼어죽는’ 표범인 것만은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라고 마치 <개그콘서트>에서처럼 제법 ‘깜찍한’ 대사를 내뱉는 그런 표범이기도 한 것이다. 

가요가 시보다 직접적인 호소력을 갖는 것은 그것이 정서 또는 감정의 직정적 표출이며 직정적 언어로써 수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언어가 그에 걸맞은 멜로디와 더불어 한층 돋보이기까지 한다면.
 
바람처럼 왔다가/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사랑이 외로운 건/운명을 걸기 때문이지/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이런 노랫말이 귓가에 들려온다면 어떻게 단번에 매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읊조려 보고 싶은, 부르짖어 보고 싶은 생각이 어찌 간절해지지 않겠는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런 내밀한 욕망, 내밀한 …을 건드리는 노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견인해 가는 안개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3위, <북한강에서>
                                                                                                     성    귀    수 | 시인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북한강에서>(작사, 작곡, 노래: 정태춘) 중에서


나는 원래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다.

“노래란 음송吟誦된 시詩”라는 통설에 그리 공감하는 편도 아니지만, 어떤 노래가 내 귓바퀴로 흘러 들어와 감흥을 유발할 때, 그 가사의 내용보다 먼저 곡의 음과 박자가, 늦어봤자 노래하는 자의 음성이, 그 음색音色이 이미 내 감성을 호릴 대로 호려, 더 이상 그것에 실려오는 가사의 의미 따위는 아예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노래는, 일단 좋아해 놓고 보면, 아주 형편없는 가사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아하는 노래의 아무리 기교적인 멜로디도 한 줄기 휘파람으로 너끈히 소화해낼 수 있으면서, 가사 한 소절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게 다반사인 것 또한 다 그런 사정 때문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정태춘이 부른 이 <북한강에서>는 내 뒤통수를 친 몇 안 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노래 역시 어두운 멜로디에 휘감겨 전해오는 비분절非分節적인 분위기에서 이미 독특한 매력이 감지되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야말로 안개의 음역音域으로까지 내려간 듯, 신음처럼 깔려 흐르는 가사 그 자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삶에 지친 한 사내의 소외된 실루엣이라도 떠오를 것 같은 이 노래의 가사는, 실은 무척 심오한 신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1절에서 3절에 걸쳐, 물에 몸을 담근다는 테마의 진도進度에 비례해, 그 물의 흐름에 있어 하류가 아닌 상류로 거슬러 오른다는 테마가 중첩되는 가운데, 정화淨化와 재생再生의 코드가 만드는 신화적 자장磁場이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2절에 집중된 반복성과 그로 유발된 절묘한 운율감은 전체 자장에 없어서는 안 될 긴장의 축軸을 형성한다. 그러고 보면, ‘짙은 안개’ 속에서 나와 내가 ‘서로 부딪치며’ 뒤섞이는, 그래서 만물의 상응 교감(correspondance)마저 가능할 것 같은 2절의 카오스적 분위기야말로, 1절에서 3절로 의식意識을 건너가게 해주는 무의식의 통로인 셈이다. 그것은 시간의 퇴적으로 짓눌린 오늘을 어느새 ‘신선한’ 시원始原으로 되돌릴 수 있게 해주는 즉, ‘거슬러’ 올라가게 해주는 마법의 통로, 안개의 통로이다.

그래서일까, ‘안개가 가득 피어’났다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때까지, 시간처럼 마냥 하류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강물의 흐름과는 어딘지 다른 느낌으로 안개가 움직인다고 느껴지는 것은? 실제 강물 위로 안개가 어찌 이동하는지는 차치且置하고, 오! 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저 ‘안개가, 안개가’ 나를 이끌어 저기 어디, 부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이 지친 사내를 견인牽引해 가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시공을 가로지르는 노래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4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신    달    자 | 시인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작사:양희은, 작곡:이병우, 노래:양희은) 중에서


이 세상에 사랑만큼 유행가와 궁합이 잘 맞는 것도 드물 것이다. 더욱 사랑의 이별은 유행가의 탄생에서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온 불변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도 사랑에 대한 이별의 노래다. 가사가 시와 맞먹는, 그래서 누구나 들으면 마음이 끌리는 그런 가사이고 누구나 들으면 자신의 슬픈 사랑의 주제곡처럼 들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래 유행가를 부르면서 마치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착각을 가지는 노래들을 불러왔다. 그것이 유행가이고, 그것이 유행가에 투사된 우리들의 삶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아버지가 불렀던 노래를 아들이 부르고 어머니가 불렀던 노래를 딸이 부르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노래, 그것이 유행가이다. 시대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도 어느 PC방 옆 노래방에서 <타향살이>와 <봄날은 간다〉가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이 글을 좀더 실감나게 쓰기 위해 전축에 양희은의 CD를 가동한다. 시간은 오후 5시가 지나고 있다. 겨울해가 곧 지려고 몸을 떠는 그런 시간을 택했다. 주변은 고요하고 마음은 공허했다. 좀 지나치게 청승맞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쓸쓸함을 쓸쓸함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두어 번 그 노래에 잠수해 들어갔다. 가사가 정말 좋다. 좋다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공감이 갈 수 있는 노래이면서 마치 자신의 체험이 우러난 것이라고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좋다라는 긍정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로 이 노래는 시작된다. 벌써 이별 냄새가 난다. ‘다시’라는 말과 ‘또’라는 반복의 의미가 지난 사랑에 대한 진한 상처와 그 상처를 에워싼 그리움을 읽게 된다. 자―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설령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누구나 이별 끝에서는 이런 진부한 맹세를 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더 가슴을 울리는 구절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에서 가슴이 탁 막히고 만다. 그래 왜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을까, 사랑을 만들어 놓았다면 왜 어째서 영원하게는 못하게 인간을  미련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미워하고 증오하고 왜 인간을 그렇게 저질로 만들어 놓았을까. 사랑은 자기보호대가 아니라 자기를 박살내는 폭풍이라고 생각하면서 입으로만 사랑이 위대하고 절대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아끼고 희생을 겁내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늘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 그것이 우리들이다.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쓸쓸한 것인가. 그럼에도 사랑이 끝나면 생도 끝장나는 절벽으로 미끄러지고 만다. 세상의 모든 빛도 사라진다. 생명과 삶의 의욕이 죽는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비추던 모든 것들 그 빛을 잃어버려” 이 노래가사는 이렇게 사실적이다.

아니 이 노래가사는 이렇게 가슴을 적신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그렇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그런 사랑을 했으며 그런 이별을 한 사람들이다.

그렇다. 사랑은 이별이 있으므로 존재하는지 모른다. 이별이 존재하므로 사랑은 복수의 의미로 매력을 가지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것일까. 유행가 가사는 이렇게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타고 내리며 세월을 따라온다.

가사가 참 좋다. 나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생의 한계에서 만난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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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5위, <한계령>
                                                                                                    이    경    림 | 시인

저 산은 네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작사:하덕규, 작곡:하덕규, 노래:양희은) 중에서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못된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지 보수적인 유교 가문에서 함부로 입 밖으로 소리내어 노래 부를 수 없었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가문의 누구도 가수가 되었다거나 하다못해 어느 콩쿨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으니 아마도 전자 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육 남매가 단칸방에서 아웅다웅 자란 기억 속에도 누구도 같이 실컷 노래 부르던 기억은 없는 걸 보면 그 믿음은 거의 사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르지는 못해도 듣는 쪽은 좋아하는 편인 내가 애절한 가요에 대한 추억이 왜 없겠는가? 특히 대중가요는 인간이 만든 어떤 예술보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어 생의 마디마다 그 시간을 함께 넘어온 가요들이 사람마다 다른 하고많은 사연들을 업고 어느날 문득 바알간 추억의 불을 켜들고 고개를 내밀곤 하는데…….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 경북 문경의 광산 사택에 살 때였다. 자고 새면 까아만 석탄길 위로 이마에 간데라 불을 단 광부들이 도시락을 달그락거리며 막장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첫새벽부터 공회당 앞 노무과에서 삑삑거리는 확성기를 통해 “에…… 안녕히 주무셨습니꺼? 은성광업소 가족 여러분……” 하고 시작되는 방송은 애국가를 필두로 하여 무작위로 흘러 나왔다.
 
대부분이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들로 기억되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가요(?)인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하는 행진곡 풍의 살벌한 곡에서부터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송민도의 <나 하나의 사랑>,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 나애심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하는 다소 음험하고 애상적인 노래를 들으며 아홉 살 소녀였던 나는 직각을 배우고 구구단을 외웠다. 다른 무슨 고상한 명곡 같은 것이 있는지 상상도 못한 채 학교에서 배우는 동요와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가요가 음악의 전부인 줄 알고 자란 셈이다.

뒤에 서울로 유학 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비로소 그것보다는 훨씬 고차원의 음악이 있다는 걸 알았고, 한때는 클래식에 미쳐서 건방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 후반기에 나타난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등 통기타 그룹의 등장은 그런 시건방을 일시에 날려주기에 충분했다.특히 양희은의 등장은 살림 잘 하고 다소곳하고 남편이나 자식을 위하여 자기 생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리요 영광이라고 수백 년 교육되어온 이 나라 여인들의 정체성을 외모부터 뒤집고 있었다.

미인의 기준이던 희고 야들야들한 피부 대신 까무잡잡한 얼굴에 약간 낮고 들린 듯한 코, 예쁘지 않은 눈, 비웃듯 조금 삐뚤어진 씨니컬한 입에서 터져나오는 도발적인 목소리는 ‘여자라는 굴레’ 밑에 수백 년 엎드려 있던 ‘인간’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 아무렇게나 걸친 청바지와 티셔츠, 흰 고무신은 옷고름 물고 수줍어하며 남성 앞에 쩔쩔매던 이 나라 여인들의 수백 년 굴종의 역사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자유였다.
 
<한계령>을 처음 들은 것은 80년대 중반쯤 어느 병실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척박한 삶에 지쳐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는 심한 노이로제로 신경병동에 입원하고 있을 때였다. 몸과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피폐했고 생의 어떤 의욕도 용기도 없었다.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 실제로 그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다.

어느날,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라디오를 통해 들은 그녀의 노래는 그때의 상황과 맞물려 막장에서 서성거리던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노랫말 속에서 오지 마라고 말하는 산은 내가 적응하기에 벅찬 바깥세상이었고, 나는 그때 정말 뼈저리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그 노래의 테이프를 구해 달라고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이상스레 그 노래는 들을 수 없었고 10여 년이 지난 90년대 중반 어느날 시인들의 모임에서 한 시인의 구성진 목소리를 통해 다시 듣게 되었다. 나는 음반 가게 몇 군데를 뒤져 그 음반을 사는 데 성공했고 지금도 아끼는 음반으로 서재 한쪽에 꽂혀 있다.

그래, 오늘도 라디오에선 끊임없이 누군가의 삶이 그 삶에 걸맞는 어떤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굽이치고 있으리라. 그리고 또 어떤 아픈 영혼이 거기 실려 출렁거리며 눈물 흘리기도 하리라.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그래, 지나간 시간들은 잊고 산이 떠밀어 내리는 저 아래 저자로 가자!
바람이 분다. 또 한 시절 용트림하며 살아보아야 할 것 아닌가?  
 
 
 

댓글 1개:

  1.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언니들이 부르던 유행가를 동요보다 먼저 따라 불렀다. 뜻도 모르고 귀동냥으로 배운 유행가를 어린 내가 왜 그토록 청승스럽게 잘 불렀는지 모르겠다.



    노랫말이나 가락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냥 따라 부른 유행가였지만 나는 그 노래들이 그냥 좋았다. 어떤 노래는 두세 번만 들으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봄날은 간다>를 제일 좋아했고 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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