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8일 일요일

'마지막 잎새'(배호 가던 날 1971.11.11)

'마지막 잎새' (1971. 11.7 타계 배호 가던 날 1971. 11. 11) 지던 날 난 쓸쓸함에 대하여 허무함에 대하여 어쩌지 못하고 가을 바람에 낙엽뒹구는 대전육군통신학교 병영兵營안 푸라타나스길을 말없이 걸었습니다. 밤이되자 더욱 님이 생각나 혼자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달콤씁쓸한 오코시를 안주삼아 님의 쉰 목소리 숨찬 노래를 추억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님이 생각나 그 옛날 병영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글을 찾아 노래를 다시 듣습니다. 청산 시인 2009. 11.8

 배호 배호 노래/66곡 모음 ... 

 

<마지막 잎새>

               - 가수 배호씨의 요절(71. 11. 7, 29세)에 부쳐

      청산


떨리는 듯 낮은 음성은
허공에 날아서 더욱 애처로운
<마지막 잎새>.

언제나 부드러운 웃음짓던 님은
가요무대의 왕자이었습니다.

생활이 바쁜 중에 기력이 다 할 때면
어느 알 길 없는 길을 헤매이던 일이
몇 번이었더이까.

굳은 님의 신앙은 불사조처럼
당신을 살리시었지요.

그러나 끝내 천주의 기림은
님을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이끄셨으니
님의 타계는 슬픔보다는
천주의 은총으로


떨리는 듯 낮은 님의 음성은
허공에 날아서 더욱 애처로운
<마지막 잎새>.


1971. 11. 8. 대전 육군통신학교에서

***

마지막 잎새


노래: 배 호    

작사: 정문 작곡: 배상태

1.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듯 낙엽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발길
바람도 살며시 비켜 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2.
싸늘히 파고드는 가슴을 파고 들어
오가는 발길도 끊어진 거리
애타게 부르며 서로 찾을 걸
어이해 보내고 참았던 눈물일래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배호 드럼치는 동영상 영화 <위험한 청춘> 중 일부.
1966년 신성일, 문희, 문정숙, 허장강, 최지희, 트위스트 김 (악단 : 배호와 그 악단) 

 

배호의 육성과 사진첩


배호 (裵湖,1942.4.24 - 1971.11.7)

한국의 대중가수
본명 : 배만금
예명 : 배호
아명 : 배신웅
출생지 : 중국 산동성 제남시

주요작품: 『돌아가는 삼각지』『비내리는 명동거리』『안개 낀 장충단공원』


1. 내용

1942.4.24.중국 산동성 제남시 경7로 위15호에서 부친 독립투사 배국민과 모친 김금순 사이에 1남 1녀중 장남으로 출생, 해방후인 1946.4.경부터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81번지에서 생활을 했다.1949년부터1955년까지 서울 창신초등학교를 다녔다(6.25때 부산 피난후 서울 수복시 서울로 옴). 1955년 서울 영창학교(성동중 전신)1학년 1학기 마치고 부친 별세로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수료했다.

1956.8.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상경하여 막내 외삼촌 김광빈를 통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 음악에 입문했다. 1958년 1년만에 드럼을 마스터하고 「김광빈 악단」에서 주로 연주를 하였다. 1960년 부평 미군부대 Camp Market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였다. 1963년 「김광빈 악단」및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 부르기 시작 김광빈 작편곡의 굳바이 등 최초로 녹음하여 가수 데뷔 음반 최초 발표, 藝名을 裵湖로 지었다.

1964년 낙원동 Prince 카바레에서 밴드 마스터로 Pick Up되어「배호와 그 악단」이란 이름으로 12인조의 풀 밴드 구성하여 드럼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같은해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과 정성수 작사 김인배 작곡의 [황금의 눈] 등을 발표하였다.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 생활 시작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 등 10여곡 병상 취임 당시 노래의 여러 군데에서 가쁜 호흡으로 인하여 가사를 짧게 끊어서 부른 흔적이 있다.

1966년 가을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청량리 단칸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던중 신진 작곡가 배상태를 만나 그의 대표곡이자 최대 힛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취임하여 1967년 4월에 음반을 발표, 특색있는 음색과 신기의 호소력으로 전국 인기챠드를 휩쓸면서 정상의 인기가수로 부상하다. 이어서 발표된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연속 힛트함으로써 인기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으며 그해부터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수상 릴레이가 시작되고 1968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 라디오 등 인기 정상과 더불어 몸이 회복되면서 왕성한 가수활동 시작하여 힛트곡 [안녕] 및 주옥같은 번안곡 등 생애 최고로 활발한 활동과 노래를 발표하면서 본인이 내 생애 최고의 한해로 말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차지 하면서 가을부터 TBC, KBS, MBC 등 주요 가요 가수상을 휩쓸었다.

1969년 1월 아세아레코드사 전속에서 신세기레코드사 전속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무겁고 어두우면서도 가일층 성숙된 톤으로 [한목숨 다바쳐][당신] 등의 명곡을 남겼다. 공개방송.업소출연.지방공연 등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 재발로 신한의원 입원중 12월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시에는 동료가수(이상렬 등)의 등에 업혀 출연 청중들을 숙연하게 한 가운데 청중들로부터 쾌유를 비는 감격스러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1970년 5월부터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어 서울 시내 극장무대를 시작으로 다시 공연활을 시작 백영호 작곡의 [비내리는 명동] 등 많은 곡을 취임하였고, 生의 觀照的 분위기의 곡들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연말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에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고 관중을 향해 인사하다. 동년 2월 문산 공연중 병세의 악화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치료하다. 동년 3월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대도레코드사에서 지난 힛트곡들을 마치 굵은 붓으로 거칠게 텃치하는 듯한 톤으로 리바이벌을 하였다. 동년 여름 그의 마지막 곡들인 [0시의 이별][마지막 잎새] 등을 취입하였다. 동년 10월 초까지 죽어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초인적인 의지로 극장. 업소 등의 무대에 섰으며, 어떤 때에는 음악만 틀어 놓고 그대로 무대에서 서 있기도 하였다.

1971년 10월 20일 MBC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이종환) 출연후 감기 증세와 함께 신장염 악화 27일 신한의원 입원. 동년 30일 세브란스 병원 입원 이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메다가 11월 7일 더 이상 가망이 없지 퇴원 미아리 집으로 가던중 완전 의식불명 그날 저녁 9시 45분경 자택에서 운명하였다. 동년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 경기도 장흥소재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서울의 여러 명소들을 노래 불렀는데 '삼각지 로타리'와 '안개낀 장춘단공원' 비내리는 명동거리' 등 추억속에 그러한 곳을 상징처럼 지난날의 사랑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슬픈사연이 깃든 애상의 표현으로 노래한 것은 어쩌면 배호 자신의 운명 같은 가련함을 추억속에 그려보며 구슬프고 애달프고 절절하게 구수한 목소리로 불러진 노래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2. 작품소개 및 수상경력



두메산골(1963년)

황금의 눈.앨범1집(1964년)

돌아가는 삼각지(1967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TV)(1969년,1970년)

서라벌가요대상 등 29개 부분 수상(1970년)

MBC(TV)특집여론조사(가수 기여도 1위)

최초가요 60년사 여론조사(좋아하는 가수 1위)

조선일보 건국이후 음악전문가 여론조사(음악성) 가수 50명중 6위

음반은 독집 20여장을 포함해 약 70여종

데뷔곡 두메산골을 비롯하여 250여곡 발표



3. 노래비 건립내역


2001.11.13.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지 교차로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건립

2002.4.21.경기 양주군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지 배호 유택에 <두메산골> 노래비 건립

2003.6.22.경주시 현곡면 소재에 <마지막 잎새> 노래비 건립

2003.7.12.강릉시 주문진 소재에 <파도> 노래비 건립

 

***

 

강홍일 기자 블로그에서

스물 아홉 짧은 생을 살다간 불세출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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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아홉의 짧은 생을 살다간 '불세출의 가수' 배호.
 얼마전 아주 특별한 만남을 가졌는데요. 29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요절가수 배호와의 만남 이었습니다. 배호는 30여년전 주옥같은 노래로 수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주인공입니다. 젊은 신세대 독자들은 풍문으로만 들었을 좀 낯선 얘기겠지만 40대 중후반을 넘긴 분들에겐 잊혀질 수 없는 인물지요.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열정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가 봅니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이 있다는 얘길 듣고 그들만의 특별한 세계를 살짝 엿보게 됐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가수들의 팬클럽이야 수도 없이 많을 뿐더러, 자칫 흘러간 가수에 대한 지나친 애정표현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깜짝 놀란 것은 회원수가 1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쓰러지기전 부른 '마지막 잎새' 운명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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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의 데뷔곡인 '두메산골'의 노래건립비.
 '마지막 잎새' 하면 먼저 오 헨리의 단편소설을 떠올릴 독자분들이 많을 겁니다. 배호가 타계하기 3일전에 불렀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배호 하면 '돌아가는 삼각지'나 '안개낀 장충단 공원'을 많이 꼽지만, 사실 진짜 열성팬들중엔 이미 노래비까지 건립돼 있는 '파도' '두메산골' '마지막 잎새' 등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의 애절한 창법에 실린 주옥같은 노랫말 때문입니다.
 
 배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마지막 잎새'를 부르다 무대에서 쓰러졌습니다. 그가 떠난 71년11월은 미처 떨어지지 않은 가로수의 낙엽까지도 슬픔에 하나둘씩 사그러 들었지요. 수많은 팬들이 그의 타계를 슬퍼하고 애도했구요. 영화로 만들어져 독자분들도 잘아는 실미도사건이 석달전인 그해 8월이었습니다. 3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팬들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가수와 노래가 좋은 자발적인 순수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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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의 멤버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오영석(캘리포니아호텔 대표), 유형재(회장), 김광빈(배호 외삼촌) 부부.
 '배기모'(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의 얘기를 계속하지요. 서울 송파구의 캘리포니아호텔에는 9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멤버들이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라 홀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만 없다면 도무지 가수를 위한 팬클럽 회원들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는데요. 더러 젊은 남녀회원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40대 후반부터 50~60대가 주축이었습니다.
 
 신입회원 소개 등 1시간여에 걸친 의례적인 행사가 끝나고, 노래무대가 시작되자 비로소 그 모임의 성격을 알만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어떤 이유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자발적인 모임에 이처럼 적극 참여하는지 궁금했거든요. 비행기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오고, 직장 휴가를 내 참석한 열성팬이 꽤 많았는데요. 이날 노래반주에 나선 연주자도 휴가를 내고 참석한 현직경찰이었습니다.
 
 
 꽃상여 쫓아간 골수팬도 연결고리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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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잎새' 노래비 제막식.
 마이크를 잡은 배호팬들의 노래실력을 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회원중엔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현직 가수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마치 '배호 노래자랑'을 보는 듯 다들 기막힌 실력을 뽐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대는 배호노래로 넘쳐났지요. 배호의 유일한 유족(외삼촌)이면서 그를 가수로 데뷔시킨 원로 작곡가 김광빈씨나 50대 후반인 회장단의 노래도 배호를 뺨치는 수준이더군요.
 
 '배기모'가 있는 날이면 사납금도 필요없다며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한다는 한 택시기사분의 열성도 알고보니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멋들어지게 불러대는 배호 노래를 검증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진정으로 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죠. 30여년전 배호의 공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배호의 꽃상여까지 뒤따라간 골수팬도 역시 노래가 연결고리였습니다.
 
 
 짧은 노래인생이 더 그리운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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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자리에 모인 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
 배호는 스물 한살때인 63년 '두메산골'로 데뷔한 이후 '누가 울어' '안녕'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 '능금빛 순정' 등 20여편의 히트곡을 남겼는데요. 앞에서 언급한대로 그의 묘지가 있는 경기도 장흥과 동해안 등에 노래비가 건립됐고 '돌아가는 삼각지'의 실제무대였던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는 '배호 길(道)'도 생겼습니다. '배호가요제'와 함께 각종 축제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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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순간까지도 팬들 앞에 서다 떠나고 싶어했던 그는 '불세출의 가수'였습니다. 팬들에겐 그의 짧은 노래인생이 오히려 더 뚜렷한 기억으로 각인돼 빛이 나는지도 모릅니다. 배호의 숨결이 그리운 사람들의 특별한 만남이 부러워보였습니다. 저한테는 딴 세상에 다가간 느낌이 드는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열정이 끝없이 펼쳐져가길 기원합니다. < 강일홍 기자 eel@>



 

댓글 1개:

  1. '마지막 잎새' (1971. 11.7 타계 배호 가던 날 1971. 11. 11) 지던 날 난 쓸쓸함에 대하여 허무함에 대하여 어쩌지 못하고 가을 바람에 낙엽뒹구는 대전육군통신학교 병영兵營안 푸라타나스길을 말없이 걸었습니다.



    밤이되자 더욱 님이 생각나 혼자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달콤씁쓸한 오코시를 안주삼아 님의 쉰 목소리 숨찬 노래를 추억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님이 생각나 그 옛날 병영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글을 찾아 노래를 다시 듣습니다. 청산 시인 2009.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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